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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에서 공리는 왜 필요할까?
수학의 모든 명제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명제 A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근거가 되는 다른 명제 B가 있어야 한다. 즉, "B에 의해 A가 참이다."라는 문장으로 서술되어야 한다. 그런데 명제 B 또한 참이기 위한 근거가 필요하다. 명제 B가 참이 되는 이유를 명제 C라고 하자. 그렇다면 수학의 각 명제는 아래와 같은 논리로 연결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래와 같은 순환논리에 빠지기는 원치 않는다.
A가 참인 이유는 B 때문이고, B가 참인 이유는 C 때문이고, C가 참인 이유는 A 때문이다…와 같은 순환논리는 결국 "A가 참인 이유는 A가 참이기 때문이다"라는 항진식tautology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래 대화를 보자.
Q. 여기 이디야 커피 어디 있어요?
A. 본죽 옆에 있어요.
Q. 본죽은 어디에 있는데요?
B. 이디야 커피 옆에 있어요.
이 대화는 본죽과 이디야 커피가 서로 붙어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못한다.
이 순환고리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정보에 의존하지 않으며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면 된다. 예를 들면 이렇게 말이다.
올리브영은 큰길가에 있으면서 건물의 모퉁이라 누구나 그 위치를 알고 있다. 즉, 다른 가게에 의존하지 않고 누구나 어디에 있는지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올리브영을 기준으로 본죽의 위치를 말할 수 있고, 이렇게 유도된 본죽의 위치로부터 이디야 커피의 위치도 말할 수 있게 된다.
수학에서 공리axiom가 바로 올리브영의 역할이다. 다른 명제에 의존하지 않고 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명제를 공리라고 부른다.
위 그림에서 C는 참이기 위해 다른 명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C는 증명 없이 그냥 참으로 두고 시작한다. C로부터 유도되는 B와 A 등을 정리theorem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공리는 일종의 약속인데, 그 약속을 어기면 어떻게 될까? 큰일날까? 수학이 무너질까? 한동안 수학자들은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예를 들어 유클리드 기하학에는 5개의 공리가 있다.
1. 두 점이 주어졌을 때, 그 두 점을 통과하는 직선을 그을 수 있다.
2. 임의의 선분을 직선으로 연장할 수 있다.
3. 한 점을 중심으로 임의의 반경의 원을 그릴 수 있다.
4. 모든 직각은 서로 같다.
5. 임의의 직선이 두 직선과 교차할 때, 교차되는 각의 내각의 합이 두 직각(180도)보다 작을 때, 두 직선을 계속 연장하면 두 각의 합이 두 직각보다 작은 쪽에서 교차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여기서 5번째 공리는 특별히 '평행선 공리'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수학자들은 이것이 혹시 1-4번까지의 공리로부터 유도되는 정리가 아닐까 궁금했다. 그래서 평행선 공리가 거짓인 새로운 공리계를 만들고 그로부터 유도되는 정리들을 모아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보았다. 평행선 공리가 공리가 아니라 정리라면, 이 정리를 부정하면 모순이 생길 것이고 그 세계는 무너질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무런 모순이 발생하지 않았다. 유클리드 기하학이 아닌 새로운 기하학의 체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고 부른다. 대표적으로 구면기하학이 있다. 구면의 삼각형은 내각의 합이 180도보다 크고, 평행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혹자는 평평한 공간을 다루는 유클리드 기하학이 자연스럽고, 휘어있는 공간을 다루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억지스럽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어린 왕자가 살고 있는 소행성 B612는 너무 작아서, 저녁 노을을 더 보고 싶다면 의자를 들고 몇 걸음 앞으로 가면 될 정도이다. 어린 왕자에게는 휘어있는 공간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이렇듯 공리를 부정한다고 해서 큰일이 나지 않는다. 공리는 절대적 참이 아니다. 참이어도 되고 거짓이어도 된다. 단지 참일 때의 세계가 있고 거짓일 때의 세계가 있을 뿐이다. 나는 올리브영을 공리로 두고 시작하는 세계가 싫다면? 파리바게트를 공리로 두고 시작하는 세계관을 만들면 된다. 모순만 생기지 않는다면 말이다.
공리의 선택에 있어서 매우 놀랍고 비직관적인 내용이 하나 있다. 연속체 가설continuum hypothesis이라고 부르는 명제이다. 아래 영상을 보자.
공리의 선택이 자유롭다는 걸 알고 나면, 수학이 예술 또는 철학과도 맞닿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 게으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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