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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이상이라면) 고등학교 시절 또는 (20대 이하라면) 대학교 1학년 때 수학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벡터]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바로 화살표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럽고 직관적이게 배우는 여러 성질들이 있습니다.
- 2차원 벡터를
- 벡터의 합은 각 원소별로 더한다.
- 벡터에 스칼라를 곱하면 각 원소에 스칼라를 곱하면 된다.
- 벡터에 -1을 곱하면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벡터가 된다.
- 벡터
- 벡터에 영벡터를 더해도 벡터는 그대로이다.
굉장히 자연스럽고, 그럴듯하고, 어려울 것이 없는 개념들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수학자들은 세계관을 확장하길 좋아합니다. 방금 제가 말한 벡터의 성질들을 목록으로 만들어보죠.
- 두 벡터는 더할 수 있다.
- 벡터에 스칼라배를 할 수 있다.
- 임의의 벡터에는 -1을 곱한 벡터가 존재한다.
- 임의의 벡터는 자신에 -1을 곱한 벡터와 더하면 영벡터가 된다.
- 임의의 벡터에 영벡터를 더해도 벡터는 변하지 않는다.
왜 했던 말을 반복하냐고요? 다음 집합을 생각해봅시다.
복잡하게 써놓긴 했는데, 그냥 계수가 모두 실수인 2차 함수의 집합입니다. 이 집합의 원소 아무거나 2개를 꺼내서 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합은 여전히
- 두 2차 함수의 합을 계산할 수 있고, 합도 2차 함수입니다.
- 2차 함수에 스칼라배를 할 수 있고, 그 결과도 2차 함수입니다.
- 임의의 2차 함수에 -1을 곱한 2차 함수를 생각할 수 있고, 그 결과도 2차 함수입니다.
- 임의의 2차 함수에 -1을 곱한 것과 원래 함수를 더하면 0함수가 됩니다. (숫자 0이 아니고 영함수입니다.)
- 임의의 2차 함수에 0함수를 더하면 함수는 그대로입니다.
어떤가요? 벡터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우리는 2차 함수를 벡터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이제 벡터와 벡터공간을 정의해보죠.
어떤 집합
1) 덧셈에 대한 교환법칙:
2) 덧셈에 대한 결합법칙:
3) 덧셈에 대한 항등원:
4) 덧셈에 대한 역원:
5) 곱셈에 대한 항등원:
6) 임의의 두 수
7) 스칼라 분배법칙: 임의의 두 수
8) 벡터 분배법칙: 임의의 두 수
교환법칙과 분배법칙 등 위에서 귀찮아서 말하지 않았던 몇 가지 항목을 추가하였지만, 큰 틀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화살표 벡터와 잘 부합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2차 함수의 집합에도 하나하나 적용할 수 있습니다. (증명은 숙제) 따라서 2차 함수도 벡터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따라오셨다면 자연스럽게 궁금해지는 포인트가 있을 겁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벡터로 볼 수 있는 대상들이 또 있을까? 당연히 많습니다. 아래는 모두 벡터공간입니다.
- 임의의 실수 3개
- 원소가 모두 실수인 2x2 행렬의 집합
- 모든 실함수의 집합
- 실수 집합 (!)
또 재밌는 벡터공간을 알고 계시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함수가 벡터라는 것이 많이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여태껏 벡터는 화살표로 그려왔는데, 그럼 함수도 화살표가 될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벡터=화살표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위에 적었던 8가지 성질들을 만족하기만 하면 우리는 그 집합을 벡터공간이라고 부를 것이고, 그 공간의 원소는 벡터라고 부를 겁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수를 벡터공간의 원소로 사용할 때 화살표를 그리기도 합니다. 특히 함수의 내적과 함수의 직교성을 말할 때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을 차용하기 위해 화살표로 그릴 때가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편의를 위한 것이지 함수는 화살표가 아닙니다. 벡터일 뿐이죠.
좀 억지스럽긴 하지만, 비유를 하나 해보겠습니다. [의자]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충 이렇습니다.

여러분은 의자를 어떻게 정의할 건가요?
- 다리가 4개이다.
- 등받이가 있다.
- 앉을 수 있다.
이 정도면 될까요? 그럼 이건요?

음... 다리가 2개군요. 생각해보니 바퀴 달린 의자는 다리를 몇 개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다리 개수는 빼죠. 등받이는 있어야 하나요?

의자군요. 등받이도 빼야겠습니다. 그럼 이건요?

누구나 한번쯤은 엉덩이를 걸쳐보았을 그것. 볼라드라고 부르는 물건입니다. 의자일까요 아닐까요? 적어도 신호를 기다리는 몇 십초 동안은 훌륭한 의자 역할을 하지 않나요? 의자라고 부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국어사전에서 의자를 찾아보니 뭐라고 나오냐면,
사람이 걸터앉는 데 쓰는 기구
라고 나옵니다. 즉, 걸터앉을 수 있으면 의자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왜 갑자기 의자냐고요? 걸터앉을 수만 있으면 의자라고 부를 수 있다면, 벡터공간의 성질을 만족하기만 하면 벡터라고 부를 수 있지 않냐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써놓고 보니 정말 실없는 소리네요.
혹시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참고한 곳들
생새우초밥집-벡터공간 (특히 벡터공간이 중요한 성질에 대한 증명을 참고할 것.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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