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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인간

[독후감] 시인 동주

게으른 the lazy 2022. 9. 22.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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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자아 성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을 겁니다. 중학교 때까지는 그냥 공부하는 기계 같았다고 할까요. 학교-학원-집의 무한반복. 공부가 재미없어진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다만 머리가 굵어진 만큼 철학적 사유에 쓰는 뇌의 영역도 넓어진 느낌이었죠. 말이 철학적 사유지 그냥 개똥철학이었습니다. 왜 사람은 가식적일까.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등등. 수학문제 푸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철학책 한권 안 읽어본 고등학생이 하는 생각이 대단해봤자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와중에 시상은 또 왜 자꾸 떠오르는지. 수학문제 풀던 도중에 연습장 한쪽 구석에 시처럼 끄적거렸던 기억은 납니다. 물론 지금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정말 다행이죠.

 



부끄럽지만, 저는 윤동주 시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의 일생에 대해서도, 시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합니다.
시(詩)는... 뭐랄까, 너무 멀게 느껴져왔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다만 안소영 저자의 '시인 동주'를 읽고 나니 그의 시가 주는 울림이 확실히 달라지긴 했습니다. 내러티브의 힘이겠죠?

 



텍스트만으로 현장을 묘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먼 나들이 차림새가 아직 남아있는 승객들은 열차의 시발점인 원산 안쪽에서 탔을 테고, 옷자락이 잔뜩 구겨져 흐트러진 행색의 승객들은 회령이나 청진에서부터 함경선을 타고 와 다시 경원선으로 갈아탔을 것이다. 아니면 국경 너머 용정 혹은 길림이나 신경 등 저 멀리 만주에서 온 이들인지도 몰랐다.

안소영, 시인 동주, 창비


마치 그 시대, 그 공간에 나를 앉혀놓은 듯한 묘사가 좋았습니다. 머리 속에 그림이 쫘악 그려진다고도 하죠. 안소영 작가 작품의 특징이라고 하는데, 다른 책도 언젠가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새벽은 먼저 소리를 밤을 깨웠다. 타타다다, 신문 배달하는 아이의 달음질 소리, 쿨룩쿨룩, 병든 노인의 오랜 기침 소리, 달그락달그락, 어느 집 부엌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 쏴아, 물장수가 항아리에 물 붓는 소리.

안소영, 시인 동주, 창비

 



극의 초반부에는 파릇파릇한 대학생의 냄새가 글자에서 느껴집니다. 

 

"아지 부러지는 소리조차 이 처녀의 마음을 핫! 핫! 놀래 놓으면서--."
정우와 동주도 뒤를 이었다. "핫! 핫! 놀래 놓으면서--."를 소학교 때처럼 추임새를 넣어 가며 합창했다."

안소영, 시인 동주, 창비

 

다만 그 초록의 냄새는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선배 문인들의 너나 할 것 없는 친일행적에 윤동주는 절필하기에 이릅니다. 물론 이후에 다시 펜을 잡습니다만, 극의 분위기는 정확히 이 시점을 기준으로 완전히 바뀌어 버립니다. 발랄한, 통통 튈 것 같은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버립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모두들 잘 알고 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저의 짧은 필력으로는 감히 담아내기 어렵기에 (사실 글재주가 없어서) 이 정도로 줄이겠습니다.



극중의 인물은 모두 실제 인물들이며, 사건들도 모두 실제 사건들입니다. 책 부록에는 주요 인물의 소개도 적혀 있어서, 잘 모르는 인물이 나오면 부록을 보며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한국의 근현대사와 당시의 문학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지는군요.


- 게으른

 

 

참고.

옥인동, 인왕산 자락길

'구리개'가 '황금정' 되었다가 다시 '을지로'가 된 사연

윤동주 시인과 함께 한 '인왕산 새로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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