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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OR의 논리테이블은 아래와 같다.
나는 XOR을 처음 배울 때 이게 참 안 외워졌었다. 두 개가 같을 때 1인지, 다를 때 1인지 항상 헷갈렸다. 물론 지금은 헷갈리지 않는다. XOR을 드디어 외웠기 때문이 아니다. eXclusive의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영어에는 이런 표현이 있다.
Apples and Oranges
과실수를 좋아하는 누군가의 명언인가 싶지만, 사실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 문구이다. 본질적으로 전혀 달라서 비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에 Apples and Oranges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다음 표현을 보자.
이 표현을 보고
사과 또는 오렌지라는 뜻이군.
라고 생각한다면 문과감성이 앞서 있는 사람이다. 반면,
사과일 수도 있고, 오렌지일 수도 있고, 둘 다일 수도 있군.
라고 생각한다면 이과감성이 앞선 사람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그냥 내 맘대로 말한 거다. 요지는 ‘or’에 있다.
영어에서의 or와 논리에서의 or는 그 의미가 다르다. 영어에서의 or는 배타성을 내포하고 있다. or가 either와 종종 붙어 나오는 이유이다. 아래 예문들을 보자. 네이버 사전에서 가져온 예문이다.
Turn the heat down, or it will burn.
불을 낮추거나, 타버리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다. 불을 낮추면서 동시에 타는 경우는 상정하지 않는다.
아래는 영화 위플래시에서 플레처의 대사이다.
Now, either you are deliberately playing out of tune and sabotaging my band, or you don't know you're out of tune which, I'm afraid, is even worse.
누군가 일부러 음을 틀려서 밴드를 망치고 있거나, 본인이 틀렸는지도 모르거나, 둘 중 하나만 가능하다. 일부러 음을 틀리는데 본인이 틀렸는지 모르는 것은 애초에 성립할 수 없다.
훨씬 더 짧은 예문을 보자.
Or what?!
보통 화내면서 “아니면 어쩔건데?!”라고 말할 때 쓰는 표현이다. 여기에도 ‘아니면’, 즉 앞의 상황을 배제하는 의미가 이미 내포되어 있다.
이제 논리에서의 or를 보자. 딱 하나만 보면 된다.
$x$는 $A$의 원소이거나 $B$의 원소라는 뜻이다. 둘 다여도 된다. 논리에서 or는 배타성을 포함하지 않는다. 이 or에 배타성을 추가하고 싶다면 어떻게 할까?
영어에는 exclusive라는 단어가 있다. 독점적인, 배타적인이라는 뜻이다. ‘독점적 출판권’이라 함은 ‘이 컨텐츠는 우리만 출판할 수 있어!’라는 뜻이다. 파울리의 배타원리는 하나의 양자 상태에 두 개의 동일한 페르미온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무슨 소린지 몰라도 괜찮다. 사실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 가장 유명한(?) 페르미온은 전자다. 파울리의 배타원리에 의해, 원자 내 두 전자는 같은 양자수를 가질 수 없다. 양자수란 주양자수, 방위 양자수, 자기 양자수, 스핀 양자수를 말한다. 역시 어렵다. 그냥 “완전히 동일한 두 전자는 원자 내에 존재할 수 없다”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이름이 ‘배타’원리인 이유이다. 즉, “나랑 완전히 동일한 전자는 허용할 수 없어. 나는 나만 존재해!”라는 뜻이다. 이 배타성을 뜻하는 영어 단어가 바로 exclusive다.
논리에서 or는 둘 중 하나라도 만족하면 참이다. XOR는 eXclusive OR이다. 둘 중 하나만 만족해야 참이다. 배타적으로, 영어의 or가 말하는 진정한(?) or를 만족할 때에만 참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논리에서 or에 해당되는 말을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할까? 즉, A일 수도 있고, B일 수도 있고, 둘 다일 수도 있음을 영어적으로는 어떻게 표현할까? 이때 필요한 것이 and/or이다.
I would like a pizza and/or chips for lunch.
점심으로 피자도 좋고, 칩스도 좋고, 둘 다 먹어도 좋다는 뜻이다. 굳이 둘 중 하나만 먹을 필요가 없다.
이제 더 이상 XOR를 헷갈리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 게으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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