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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를 잘 활용하려면?

게으른 the lazy 2024. 6. 14. 13:40

pixabay

 

 

요즘은 MBTI가 대세(?)이지만 유형 검사는 그것 말고도 더 있습니다. DISC 검사가 그 중 하나인데요. 여러분이 소중히 하지 않고 매일 괴롭히는 허리 디스크가 아니고, 행동 유형을 아래와 같이 4가지로 분류한 것입니다.

D: Dominant, 주도형
* 목표지향적입니다.
* 시키지도 않았는데 앞장서는 사람이 있다면 D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그림 아무거나 그리라고 시키면 꼭 과녁을 그립니다.
* 잘 되면 타고난 리더이고, 잘못되면 독불장군입니다.
* D형이 극혐하는 말이 있습니다. "너는 나대지좀 마."

I: Influential, 사교형
* 친구가 많은 타입입니다.
* 딱 보면 티가 납니다. 모두가 좋아하거든요.
* 그림 아무거나 그리라고 시키면 꼭 음표를 그립니다.
* 팀의 윤활유 역할인데, 업무능력보다 사교성이 더 돋보일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 I형에게 이렇게 말하면 진짜 화냅니다. "너는 회사 놀러 나왔냐?"

S: Steady, 안정형
* 제일 눈에 안 띄는 타입입니다. 조용하거든요.
* 묵묵히 팀을 서포트하는 역할을 주로 맡습니다. 게임으로 치자면 힐러 포지션입니다.
* 그림 아무거나 그리라고 시키면 꼭 꽃을 그립니다.
* 능력이 받쳐주면 난 자리가 바로 티나는데, 능력이 못 받쳐주면 잉여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 S형이 삐지는 말은 이겁니다. "뭐 그런 걸로 유난이야?"

C: Conscientious, 신중형 (Compliant나 Cautious로 쓰기도 합니다.)
* 까칠합니다. 대신 정확합니다. 시니컬한데 아이디어는 좋습니다.
* 팀의 브레인 역할을 할 때가 많습니다. 
* 그림 아무거나 그리라고 시키면 꼭 디테일이 넘치는 그림을 그립니다.
* 그 좋은 능력이 그놈의 성격과 완벽주의 때문에 인정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 C형의 발작버튼이 눌리는 말이 있습니다. "너 그거 틀렸어."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절대적인 공식은 아닙니다. 나무위키 페이지의 개요를 읽어보세요. 어쨌든 팀을 만든다면 모두 필요한 유형들입니다. D형은 외향적+업무중심, I형은 외향적+사람중심, S는 내향적+사람중심, C는 내향적+업무중심입니다. 이 유형들이 모두 균형을 맞춰야 팀의 구색이 갖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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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형적인 C형입니다. 그래서 완벽주의를 버리려고 항상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님 틀렸음"이라고 말하면 흠칫 놀랍니다. '니가 뭔데 감히 나보고 틀렸대?'라는 권위주의적 발끈함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자신있게 말한 것이 틀린 정보이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평생 완벽주의를 버리지 못할 수도 있겠군요.

몇 년 전 동역학 강의 중에 지구의 공전궤도가 살짝 찌그러져있음을 말하면서, '이것 때문에 여름과 겨울이 생기는 것이죠.'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딱히 준비한 멘트는 아니었는데 즉흥적으로 나온 말이었습니다. 심지어 틀린 줄도 몰랐습니다. 아무도 말을 안 해주더라고요. 그러다가 얼마 전에 아래 영상을 봤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NsjEBvisoM

그리고 저는 이불킥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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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거나 논문을 읽다 보면 모르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부분을 해소를 해야 할지 넘어가도 되는지 판단이 안 된다는 겁니다. 논문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 처음 보는 용어, 생소한 개념 등이 나옵니다. 무슨 뜻인지 너무 궁금합니다. 무슨 뜻인지 꼭 알아야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이것 하나 때문에 논문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는게 아닐까 두려움이 앞서면, 그 단어 하나 찾아보느라 논문은 뒷전으로 밀리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내면의 동력을 잃고 지칩니다. 논문 읽기가 싫어집니다.

저는 이 버릇을 고치는 데에 정말 오래 걸렸습니다. 지금은 모르는 개념이나 용어가 나와도 일단 그냥 쭉 읽습니다. 전체 내용을 파악하고 머리 속에 그림을 그리고 나면, 내가 건너뛰었던 것이 중요한지 아닌지 어느 정도 판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너무 꼼꼼히 한 번 읽는 것보다, 약간 빠르게 두 번 읽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속도에 욕심 내면 힘들어서 지칩니다. 그런데 디테일에 욕심을 부려도 힘들어서 지칩니다. 적절한 속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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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완벽주의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꼼꼼하다는 칭찬도 들을 겁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과하면 안됩니다. 시간은 무한하지 않으므로, 적당한 깊이로 파고들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원래 하려던 일에서 너무 멀어진 건 아닐까, 이렇게까지 디테일에 신경쓰는 것은 내 욕심이 아닐까 항상 염두해야 합니다. 

과는 불급이라 했습니다. 주객이 전도되면 안됩니다. 큰 그림을 놓치지 않으면서 공부하고 연구하는 자세를 뼈에 새기세요. 누구나 성장은 느립니다. 짧은 시간에 느껴지지 않습니다. 작은 차이가 긴 시간 동안 적분되어 나중에는 큰 차이를 만듭니다. 지금부터 시작하세요. 습관으로 만드세요. 먼 훗날 지금을 되돌아보면 성장한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