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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에서의 역설

게으른 the lazy 2024. 6. 7. 03:09

 

 

0. 들어가며

 

수학에서 역설은 흥미로운 주제이다. 듣다 보면 "이게 뭐지...?" 싶은데, 말이 되면서 동시에 말이 안되는 모순을 일으킨다. 그래서 흥미롭다. 생각할 거리를 주기 때문이다. 물론 흥미에서 끝나면 안되고, 해결을 해야 한다.

 

• 그렐링-넬슨의 역설

• 도서관 사서의 역설

• 이발사의 역설

• 베리의 역설

• 러셀의 역설

• 거짓말쟁이의 역설

 

이것들은 모두 다른 형태를 띠고 있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같거나 비슷한 명제의 다른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주의: 이 글을 읽다보면 반복되는 단어에 정신이 혼미해질 수 있음

 


1. 그렐링-넬슨의 역설 (Grelling–Nelson paradox)

 

• 자기서술적인(Autological) 단어는 단어의 의미가 스스로를 설명하는 단어이다.

• '짧다'는 짧다. 그래서 '짧다'는 자기서술적이다.

• 비자기서술적인(Heterological) 단어는 단어의 의미가 스스로를 설명하지 못하는 단어이다.

• '길다'는 길지 않다. 그래서 '길다'는 비자기서술적이다.

• '한글'은 한글이므로 자기서술적이다. '영어'는 영어가 아니므로 자기서술적이지 않다.

 

• 그렇다면 '비자기서술적'은 비자기서술적인가?

 

 

• '비자기서술적'이 비자기서술적이라면 스스로를 설명하고 있으므로 자기서술적이어야 한다.

• '비자기서술적'이 자기서술적이라면 자기를 서술하므로 비자기서술적이어야 한다.

• 즉, 어느 답을 해도 모순이 된다.

 

• 뭔가 말장난에 속는 느낌이라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 이 질문의 답은 "그렇다" 또는 "아니다" 둘 중 하나여야 한다.

 

• "짧다"는 짧다. $\Longleftrightarrow$ "짧다"는 자기서술적이다. (자)

• "길다"는 길지 않다. $\Longleftrightarrow$ "길다"는 비자기서술적이다. (비)

 

• 만약 "비자기서술적"이 비자기서술적이라면?

• "비자기서술적"은 비자기서술적이다.

• (비)에 의해 "비자기서술적은" 비자기서술적이 아니다. (모순)

 

• 만약 "비자기서술적"이 비자기서술적이지 않다면?

• "비자기서술적"은 자기서술적이다.

• (자)에 의해 "비자기서술적"은 비자기서술적이다. (모순)

 

• 즉, '비자기서술적'은 비자기서술적이라고 해도 모순이고 비자기서술적이지 않다고 해도 모순이다.

• 사실 '자기서술적'도 문제이다.

• '자기서술적'은 자기서술적이라고 해도 말이 되고, 자기서술적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 된다.

 


2. 도서관 사서의 역설 (The librarian paradox)

 

• 어떤 도서관에 소설도 있고 시집도 있고 수학책도 있고 과학책도 있다.

• 이 도서관의 사서가 책들의 카탈로그를 만들기로 했다.

• 소설과 시집의 카탈로그를 각각 C1, C2라고 이름 붙였다.

• 그리고 특이하게도, C1, C2에는 자신의 이름도 들어 있다.

• 수학책과 과학책의 카탈로그는 각각 C3, C4라고 이름 붙였다.

• 이것들에는 자신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 이제 마지막으로 카탈로그의 카탈로그를 두 권 만들었다.

• A에는 자기 자신을 적은 카탈로그들을, B에는 자기 자신을 적지 않은 카탈로그들을 적었다.

 

 

• 그런데 A와 B도 카탈로그이다.

• A와 B도 A 또는 B에 들어가야 한다.

• A는 어디에 적든 말이 된다.

• B는 어디에 적어도 모순이다.

• B를 A에 적으면 B에는 자신이 적혀있지 않으므로 모순이다.

• B를 B에 적으면 B에 자신이 적혀 있으므로 모순이다.

• 사실상 Autological/Heterological과 같은 문제이다.

 

 


3. 이발사의 역설 (Barber's paradox)

 

• 어떤 마을에는 두 분류의 사람들이 있다.

• 셀프 면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기 자신만 면도한다. 남을 해주지도 않고, 남이 해주지도 않는다.

• 셀프 면도를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누군가 면도를 해줘야 한다.

• 이 마을에는 이발사가 딱 한 명 존재한다.

• 이발사는 셀프 면도를 못하는 사람들만, 모두, (all and only) 면도해준다. 셀프로 하는 사람은 해주지 않는다.

 

• 이 이발사는 셀프 면도하는가?

 

 

 

• 이발사가 셀프 면도하려면, 셀프 면도하는 사람은 해주지 않아야 하므로, 셀프 면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

• 이발사가 셀프 면도하지 않으려면, 셀프로 못하는 사람은 자기가 해줘야 하므로, 셀프 면도를 해야 한다.

 

• 역설들 중에서 이게 제일 복잡하다.

• 문제 세팅도 조심해서 해야 하는데, 이발사가 셀프 면도 못하는 사람들을 전부(all), 그들만(only) 해줘야 한다.

•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하면 해결되는거 아니냐"라는 지적이 많다.

• 요지는 "이렇게 저렇게" 바꾸지 않으면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 이 링크를 보면 "이발사가 딱 한 명 존재한다"는 전제를 꼭 깔아야 한다고 한다.

• 그렇지 않으면 "이발사가 존재하지 않음(공집합의 비존재성)"으로서 모순이 해결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4. 베리의 역설 (Berry's paradox)

 

• 1은 "일"이라는 한 글자로 정의할 수 있다.

• 51672569는 "오천백만육십칠만이천오백육십구"라는 열 다섯 글자로 정의할 수도 있지만

• "이천이십이년대한민국인구수"라는 열 세 글자로 정의할 수도 있다.

• 숫자를 정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짧은 것만 택한다.

• 물론 숫자가 아주 커지면 더 많은 글자가 필요할 것이다.

• 모든 자연수를 "스무 글자 이하로 정의할 수 있는 자연수"와 "스무 글자 이하로 정의할 수 없는 자연수"로 나누자.

 

 

• 스무 글자 이하로 정의할 수 있는 자연수는 유한개이다.

• 따라서 스무 글자 이하로 정의할 수 없는 자연수 중 가장 작은 자연수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 "스무 글자 이하로 정의할 수 없는 가장 작은 자연수"는 둘 중 어디에 들어가야 하는가?

 

• "스무 글자 이하로 정의할 수 없는 가장 작은 자연수"는 정확히 스무 글자이다.

• 왼쪽에 넣으려 하니 "스무 글자로 정의할 수 없음"이라는 자기 설명에 모순이다.

• 오른쪽에 넣으려 하니 스스로를 스무 글자 이내로 정의했으므로 모순이다.

 

 


5. 러셀의 역설 (Russell's paradox)

 

• 집합 $X$는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갖지 않는 집합들을 모두 모은 것이다.

 

 

• 우선 집합이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갖는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알아야 한다.

• 집합 $A$를 "아이폰을 모두 모은 것"으로 정의하자.

• 집합 $B$는 "아이폰이 아닌 것을 모두 모은 것"으로 정의하자.

• 집합 $B$는 아이폰이 아니다. 따라서 $B$는 $B$의 원소이다.

 

• 위의 집합 $X$는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갖는가? 갖지 않는가?

 

• 자신을 원소로 갖는다면, 자신을 원소로 갖지 않는 것들만 모았다는 정의에 모순이다.

• 자신을 원소로 갖지 않는다면, 역시 집합의 정의에 의해 자신을 원소로 가져야 해서 모순이다.

 


6. 거짓말쟁이의 역설 (Liar paradox)

 

• 아래의 명제를 보자.

 

 

• 명제 $P$는 참인가? 거짓인가?

• 참이라면, 스스로 거짓이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거짓이다.

• 거짓이라면, 스스로 거짓임을 밝히고 있으므로 참이다.

 

 


7. 역설들의 형태

 

• 지금까지 나왔던 역설들을 모두 모아보자.

 

 

• 자세히 쳐다보면...

• 모두 같은 형태임을 알 수 있다.

 

[뭐뭐]하지 않은 것들의 집합은 [뭐뭐]한가?
([뭐뭐]한 집합에 속하는가?)

 

 

• 공통적으로 부정형의 집합이 자기 참조를 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 재밌는 점은, 괴델의 불완정성 정리정지문제(Halting problem)에도 비슷한 형태가 보인다는 것이다.

• 괴델의 불완정성 정리에는 "나의 증명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가 등장하며,

• 정지 문제에서는 기계의 설계도를 입력받아 기계가 멈출지를 판단하는 기계에 자신의 설계도를 입력한다.

 


8. 집합론의 공리계

 

• 이런 간단한 명제조차 참/거짓을 판단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 수학자들이 단체로 멘붕했다고 한다.

• 그래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집합론의 공리계를 만들었다.

• 가장 유명(?)한 것은 ZFC 공리계이다.

• ZFC에는 분류 공리(Axiom of Separation)이라는 것이 있는데, 원문(?)을 해석하자면 아래와 같다.

 

집합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로만 만들 수 있다.
정의된 집합 밖에서 아무거나 가져와서 집합을 만들 수는 없다.

 

• 기초 공리(Axiom of Foundation) 또는 정칙성 공리(Axiom of Regularity)라고 부르는 것도 있다.

• 역시 해석하자면 아래와 같다.

 

공집합이 아닌 모든 집합은 자신과 서로 소인 원소를 갖는다.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갖는 집합은 허용하지 않는다.

 

• 집합이 자신의 원소와 서로소라는 것이 다소 난해하다.

• 모든 것을 집합으로 보겠다는 말인 것 같다.

• 사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 암튼 러셀의 역설에 나오는 집합이 아예 집합이 아니도록, 그런 집합이 존재하지 않도록 공리로 못박아버렸다.

 

• ZFC 공리계 말고도 Type Theory도 있고, NBG(노이만-베르나이스-괴델) 공리계도 있다.

• 잘 모르니까 패스한다.

 


9. 마치며

 

• 언젠가 한번 정리하고 싶었던 내용인데 드디어 정리했다.

• 집합론은 너무 파지 말자.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