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에서 한정사를 읽는 방식에 대하여
(참고: quantifier를 양화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한정사라고 부르기를 더 좋아한다.)
아래 두 명제를 보자.
For $x, y \in \mathbb{R}$,
1) $\forall x, \exists y, x+y=0$
2) $\exists y, \forall x, x+y=0$
둘 중 하나만 참이다. 어느게 참일까?
명제는 앞에서부터 읽어야 한다. 그리고 각각의 한정사는 뒤의 모든 내용을 한정짓는다.
1) $\forall x, \exists y, x+y=0$
임의의 실수 $x$에 대해서 뒤의 내용이 참이라는 뜻이다. 즉,
임의의 실수 $x$에 대해 어떤 실수 $y$가 존재하여 $x+y=0$을 만족한다.
라는 뜻이다. 간혹 아래와 같이 번역되는 경우가 있다.
임의의 실수 $x$에 대해 $x+y=0$을 만족하는 어떤 실수 $y$가 존재한다.
이런 방식은 위험하다.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면서 오히려 헷갈리기 때문이다. 어떻게 뒤죽박죽이 되는지는 잠시 뒤에 설명하겠다. 어쨌든 본 명제는 참이다. 임의의 실수 $x$에 대해서 $-x$라는 실수가 존재하여 $x + (-x) = 0$이기 때문이다.
2) $\exists y, \forall x, x+y=0$
어떤 실수 $y$가 존재하여 뒤의 내용이 참이라는 뜻이다. 어순을 바꾸자면, 뒤의 내용이 참인 어떤 실수 $y$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뒤의 내용은
임의의 실수 $x$에 대해 $x+y=0$이다.
이다. 합쳐보면,
어떤 실수 $y$가 존재하여, 임의의 실수 $x$에 대해 $x+y=0$이다.
가 된다. 이것을 어순을 바꿔
임의의 실수 $x$에 대해 $x+y=0$을 만족하는 어떤 실수 $y$가 존재한다.
라고 적으면 의미가 굉장히 모호해진다. 앞의 1번 명제의 어순을 바꾼 버전을 보자.
임의의 실수 $x$에 대해 $x+y=0$을 만족하는 어떤 실수 $y$가 존재한다.
완벽히 같은 문장이 되어버렸다. 번역을 하더라도 어순을 함부로 바꾸면 안되는 이유이다. 굳이 이 어순을 고집하려면 쉼표를 이용하여
1) 임의의 실수 $x$에 대해, $x+y=0$을 만족하는 어떤 실수 $y$가 존재한다.
2) 임의의 실수 $x$에 대해 $x+y=0$을 만족하는, 어떤 실수 $y$가 존재한다.
라고 쓸 수는 있겠으나, 누가 이런 방식을 좋아하겠는가?
다시 원래 어순으로 돌아와서,
어떤 실수 $y$가 존재하여, 임의의 실수 $x$에 대해 $x+y=0$이다.
라고 써야,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모호하지 않은 문장이 된다. 이 명제는 거짓이다. 모든 실수에 더하여 0을 만드는 고정된 실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엔 약간 어려운 버전이다. 수학의 즐거움 기초증명수업 2강에 나왔던 명제이다.
Let $f: A \to \mathbb{R}$ be a function where $A$ is a subset of $\mathbb{R}$. We say $f$ is bounded if
1) $\forall x \in A, \exists M>0, |f(x)| \le M$.
2) $\exists M>0, \forall x \in A, |f(x)| \le M$.
둘 중 어느 것이 bounded를 제대로 설명하고 있을까?
1번은 아래와 같이 번역된다.
임의의 $x \in A$에 대하여, 어떤 $M>0$가 존재하여, $|f(x)| \le M$를 만족한다.
이 문장은 bounded를 설명하지 못한다. $e^x$와 같은 발산하는 함수도, 임의의 $x$에 대해 $e^x$보다 큰 어떤 실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2번은 아래와 같이 번역된다.
어떤 $M>0$이 존재하여, 임의의 $x \in A$에 대해 $|f(x)| \le M$를 만족한다.
이 문장은 bounded를 제대로 설명하고 있다. 맨 앞에 나온 $M$이 뒤의 모든 표현을 한정짓기 때문이다. Bounded라 함은 함수값이 유한한 범위 내에 있다는 것인데,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 범위가 가장 앞에 등장해서 뒤의 모든 내용을 한정지어야 한다.
수학은 일종의 언어체계이다.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단어와 표현과 문장을 익혀야 한다. 전공수학을 배우면서 당황하게 되는 포인트 중 하나가 한정사였다. 본 글에서는 한정사가 들어간 문장을 읽으면서 헷갈리기 쉬운 부분을 알아보았다.
- 게으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