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공부의 어려움에 대하여
대학 공부의 어려움에 대하여
몇 년 전 대학생들의 기초학력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대두된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라고 단정짓기 전에 그것이 왜 문제인지, 어떤 면에서 문제인지, 문제가 맞는다면 원인은 무엇일지에 대한 파악이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고민해보았고 그 결론을 적어보고자 한다. 어떤 면에서는 대학 공부가 고등학교까지의 공부와 무엇이 다르길래 대학이 고등교육기관이라 불리는가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공부에는 세 단계가 있다. 첫 번째는 “어떻게 how?”를 배우는 것, 두 번째는 “왜 why?”를 배우는 것, 세 번째는 “그래서 뭐 so what?”을 배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공기의 영향을 무시할 수 있다면 수직 위로 던진 공이 얼마나 높이까지 올라가는지, 다시 땅에 떨어질 때까지 몇 초가 걸리는지 모두 계산할 수 있다. 간단한 공식이 이미 완성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공식에다 초기 속도만 집어넣으면 된다. 이렇게 공식을 외워서 문제를 푸는 것이 “어떻게?”에 해당된다. 고등학교까지의 공부는 철저히 이런 방식에 맞춰져 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풀며 저 문제는 어떻게 푸는지, 문제별로 풀이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운다.
그런데 이 공식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뉴턴역학 제2법칙만 안다면, 그리고 약간의 수학만 곁들이면 누구나 이 공식을 유도할 수 있다. 사실 이름만으로도 무시무시한 미분방정식을 풀어야 하지만, 기껏해야 1차 상미분방정식이므로 다항식의 적분으로 충분하다. 이렇게 공식이 나오는 과정을 파헤치는 것이 “왜?”에 해당된다.
“어떻게”에서 “왜”로 넘어가야 하는 이유는 뭘까? 수직 위로 던진 공에 대한 공식은 전제조건이 붙는다. 공기의 영향을 무시할 수 있을 때이다. 아주 무겁거나, 표면적이 아주 작거나, 우주처럼 공기가 없는 환경에서만 적용할 수 있는 공식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지표면 근처에서만 쓸 수 있다. 지표면에서 많이 떨어지면, 즉 고도가 높아지면 중력가속도의 크기가 달라지므로 공식도 달라져야 한다. 따라서 실제와 좀 더 정확한 공식이 되려면 공기와 고도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왜?”의 단계까지 왔다면 이제 공식을 외우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진다. 외울 수 없는 식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비유가 아니라, 어느 면으로도 공식을 외우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애초에 공부는 무언가를 외우는 행위가 아니다. 익숙해지고 체화한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다. 이제 문제 풀이는 더 이상 공식의 대입이 아니게 된다. 문제를 분석하고, 적절한 풀이방법을 발굴해내고, 그것을 검증하는 과정이다. 이로부터 자연스럽게 왜 문제마다 접근법이 달라져야 하는지도 깨닫게 된다. 기존의 “어떻게?”로만 접근했던 문제 풀이의 과정 하나하나마다 “왜?”라는 질문을 붙인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은 “그래서 뭐?”이다. 수직 위로 던진 공의 최대 높이를 어떻게 계산하는지, 계산식은 어떻게 도출되었는지 여러 조건을 모두 고려하여 완벽하게 설명했다고 치자. 그게 왜 중요할까? 우리 삶에 어떤 도움을 주는가? 누군가가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을 할 것인가?
멋진 단어로 포장하자면 이것은 영속성의 문제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오래 살아남았거나 지금도 살아남은 지식과 기술은 모두 “그래서 뭐?”에 답을 한 것들이다. 투사체가 받는 공기의 영향을 계산하는 것에서부터 비행기가 만들어졌다. 지금 여러분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스마트폰과 컴퓨터는 애니악ENIAC에서 시작되었는데 애니악은 원래 탄도의 궤적을 정확하기 위해 만들어진 계산기였다. 고도에 따라 중력가속도가 다름을 이용하여 인공위성을 날릴 수 있게 되었다. 인공위성이 없으면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볼 수 없다. 시속 100 km로 달리면서도 실시간으로 나의 위치를 알 수 있는 것은 인공위성과 GPS가 있기 때문이다. GPS에는 특수상대성이론이 사용된다. 이 모든 지식과 기술은 “그래서 뭐?”에 답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공부가 어떤 형태로든 의미있는 일이길 바란다면, 그래서 거창하게 표현하여 사회에 조금이라도 내 흔적을 남기고 싶다면, 디테일에 매몰되지 말고 한발짝 떨어져서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내가 왜 이걸 공부하고 있는지, 내가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 “그래서 뭐?”라는 질문에 나는 어떻게 답할 것인지.
대학 공부가 어려운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뭐?”라는 질문은 외워서는 절대 답할 수 없다. 외운 답은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근거가 없는 답은 본질을 묻는 반박에 무너진다. 대학 공부는 이렇게 학문의 본질을 건드리는 작업이다. 어려울 수밖에 없으며 어려워야 한다. 대학이 괜히 고등교육기관이 아니다. 학생이라면 스스로가 얼마나 본질에 접근하고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며, 대학은 피상적인 지식을 넘어서 핵심을 잘 전달하고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강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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