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찰력의 역학적 이해 (부제: 초원이는 꼭 손을 내밀어야 했을까)
“마찰력과 외력이 같으면 물체가 정지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 질문을 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왜 아닌지 설명해보겠습니다.
정지 마찰력은 이름 그대로 물체가 정지해 있을 때 작용하는 마찰력입니다. 정확하게는 마찰면에 대해 정지해 있다고 해야겠죠. 아래 그림과 같이 마찰이 있는 바닥면 위에 질량이 $m$인 상자를 놓고 오른쪽으로 당겨봅니다.
상자가 마찰면에 대해 정지해 있으려면 외력 $F$와 마찰력 $f_s$가 같아야 합니다.
$F = f_s$
수직 방향으로도 움직이지 않을 테므로 수직항력과 중력도 같아야 합니다.
$N = mg$
알짜힘이 0이므로 상자는 어느 방향으로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정지해 있으므로 속도도 0이고($v=0$) 알짜힘이 0이므로 가속도도 0입니다($a=0$).
여기서 첫 번째 함정이 나옵니다. 위 그림에서 마찰력 $f_s$의 크기는 $\mu_{s}N$이 아닙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습니다. 외력이 작용하자마자 갑자기 $\mu_{s}N$ 크기의 마찰력이 작용하지는 않겠죠? 아주 작은 외력을 가했는데 갑자기 큰 마찰력이 작용한다면 상자는 왼쪽으로 움직일 텐데,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정지 마찰력은 외력과 균형을 이루어야 물체가 정지해 있을 수 있습니다.
$\mu_{s}N$는 “최대” 정지 마찰력입니다. 정지 마찰력이 가질 수 있는 최대값이라는 뜻입니다. 외력이 정지 마찰력보다 커지면, 정지 마찰력으로는 더 이상 정지 상태를 유지할 수 없어서 미끄러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운동 마찰력은 최대 정지 마찰력보다 크기가 작습니다. 외력이 최대 정지 마찰력을 넘어선 순간 물체는 가속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위 그래프는 정지마찰계수가 0.5, 운동마찰계수가 0.4인 표면 위에 무게 100N의 물체를 놓고, 외력과 마찰력의 관계를 그린 것입니다. 외력이 50N이 될 때까지는 외력과 정지 마찰력이 같습니다. 외력이 50N을 넘어선 순간 운동 마찰력이 작용하기 시작하고, 그 크기는 외력보다 작습니다. 따라서 가속을 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두 번째 함정이 나옵니다. 위 그래프에서 외력이 50N보다 큰 구간은 물체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외력이 40N인 구간은 물체가 정지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외력이 40N이면 물체는 항상 정지해 있을까요?
아닙니다. 왜냐하면, 위 그래프는 외력을 0에서 계속 증가시키면서 외력과 마찰력을 그린 것이거든요.
외력이 50N보다 큰 상태에서 – 즉 움직이고 있는 상태에서 - 외력을 살살 줄여보겠습니다. 40N까지 줄여보죠. 운동 마찰력보다 외력이 크므로 물체는 여전히 가속하고 있습니다. 즉 물체에 작용하는 마찰력은 운동 마찰력이고 크기는 40N으로 일정합니다. 외력-마찰력 그래프는 아래처럼 그려질 겁니다.
위 그래프의 A 지점에서 물체에 가하는 외력과 마찰력은 40N으로 같습니다. 물체의 운동상태를 유지한 채로 외력을 줄였으므로 물체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찰력과 외력이 같아도 물체는 움직이고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외력이 40N과 같아지는 순간 멈추지 않을까?” 이 말이 사실이라면 컬링이라는 게임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손을 떠난 순간 스톤은 마찰력만 받고 있으므로 그 자리에서 바로 멈춰야 합니다. 소파, 침대, 무거운 책상 등을 밀어서 움직여본 적이 있으신가요? 처음에는 당연히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낑낑대며 큰 힘을 가해야 겨우 움직이기 시작하죠. 그 후 적당히 힘을 조절하면 소파가 등속 운동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바로 이때가 외력과 마찰력의 크기가 같은 상태입니다. 뉴턴의 운동 제2법칙에 의해서죠.
이제 외력을 40N에서 더 줄여보겠습니다. 물체는 감속하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바닥이랑 붙어버릴 겁니다. 그때부터는 정지 마찰력이 작용하겠죠. 정확히 어느 시점에 멈출지는 에너지 보존을 고려해야 할 겁니다.
관점을 살짝 바꿔보겠습니다. 아래와 같이 외력과 운동 마찰력을 받고 있는 상자를 봅시다.
이 그림만 보고 알 수 있는 정보가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운동 마찰력이 작용한다는 말은 상자가 바닥면에 대해 운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즉, 속도는 0이 아닙니다. 그리고 운동 마찰력의 크기도 알 수 있습니다.
$f_k = \mu_{k}N$
그 외에는 어떤 정보가 있나요? 아무런 정보도 없습니다. 상자가 운동하고 있다고 해서 외력이 마찰력보다 크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앞에서 컬링 스톤의 예시를 생각해보면 됩니다. 그래서 가속도의 방향은 알 수 없습니다. 한 가지만 더 짚어보죠. 뉴턴의 운동 제2법칙에서 알짜힘이 0인 경우는 아래처럼 쓸 수 있습니다.
$\Sigma F = 0 \Leftrightarrow a=0$
알짜힘이 0이면 가속도가 0임을 뜻합니다. 가속도가 0임은 속도가 일정함을 뜻합니다. 속도는 0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즉, 속도의 크기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마찰력과 외력이 같다는 사실만으로 속도가 0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외력이 최대 정지 마찰력을 넘어서 운동하기 시작한 순간, 정지 마찰력이 운동 마찰력으로 변한 것인가요? 아니면 정지 마찰력은 없어지고 운동 마찰력이 생긴 것인가요?”
마찰력의 근원을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일단 아래 영상을 보시죠. 1분 53초부터 1분 정도만 보면 됩니다.
여기도 같이 보시면 좋습니다. 마찰력의 근원은 마찰면의 요철, 더 작게는 분자간 결합력입니다. 두 면의 상대운동이 없으면 두 면의 분자들은 일종의 ‘접합’ 상태입니다. 이 접합을 떼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힘이 필요합니다. 이 힘보다 작은 힘을 가해봤자 접합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정지 마찰력입니다. 충분한 크기의 힘을 가해 접합이 떨어졌다면, 이제 다시 분자들이 접합되기 쉽지 않습니다. 순간순간 부딪히면서 약간의 저항은 있겠지만 접합 되어있을 때보다는 작은 저항입니다. 운동 마찰력입니다.
비유를 해보겠습니다. 아래는 영화 말아톤의 한 장면입니다.
극 중 초원이가 달리던 중 손을 내밀어 관중들과 하이파이브를 합니다.
이때 갑자기 어느 관중이 초원이의 손을 확 잡아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손을 뿌리치지 못하면 초원이는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합니다. 정지 마찰력이 작용하는 겁니다. 손을 뿌리칠 만큼, 또는 접합을 떼어낼 만큼의 힘을 가하지 않으면 초원이는 운동할 수 없습니다. 충분한 힘을 가해 손을 뿌리쳤다면, 이젠 관중들이 다시 초원이의 손을 잡아버리기 쉽지 않습니다. 운동 상태가 감속 없이 갑자기 정지 상태로 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물론 하이파이브로 인해 약간의 저항(운동 마찰력)은 있겠지만 최대 정지 마찰력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마찰력을 특이한 힘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유물체도를 그릴 때 마찰력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어려워하는 걸 종종 봤는데요. 마찰력도 그냥 힘의 한 종류일 뿐입니다. 힘의 근원이 다를 뿐, 물체에 작용하는 힘이라는 점에서는 외력, 중력, 탄성력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점만 이해한다면 마찰력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게으른